ANTIFA★黒い彗星검은혜성  だにえる단열の一言。 -3ページ目

ANTIFA★黒い彗星검은혜성  だにえる단열の一言。

韓国籍在日朝鮮人3世、いわゆる「在日コリアン3世」のだにえる단열が大好きな『日本』について書く、そんなブログです。
ANTIFA★黒い彗星CHE★gewaltの新しい一歩のブログでもあります。いつまでも大切だよ。

赦(ゆる)しという名の暴力

 前回の拙稿(関連リンク:『歴史と和解の問題』―ファシストは和解と対象ではなく、断罪の対象―朝鮮・韓国語)に対して、数日前にパク・ユハ教授の反論文(関連リンク:FB記事、朝鮮・韓国語)に接しました。この反論文はパク・ユハ教授が提起された一部の問題―特にパク・ユハ教授の本〈帝国の慰安婦〉と関連した問題―について、私は後に〈帝国の慰安婦〉という本について書評を書くながらより詳細な答弁を差し上げたいと思います。

 いまこの場を借りていったん一般論から広げてみたいと思います。つまり、「慰安婦」という問題の本質に対して一度よく考え、パク・ユハ教授が話そうとする「赦しと和解」の裏ではどれだけおぞましい国家主義的、暴力的思考がうごめいているのか見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1.パク・ユハ教授は次のように主張しています。「私が〈国家賠償〉要求が困難だろうという理由は問題がないからではなく『犯罪』として問う『法』自体が近代国家システムには存在しないからです。もちろん、男性中心のシステムであったからです。」
 
 この主張も歴史的事実とは完全に違います。慰安婦問題の本質はなんでしょうか?慰安婦徴発(強制的な徴募)の形態は朝鮮から主に就業詐欺と皇軍を背景とした人身売買である可能性があり、フィリピンあるいは中国のような露骨的な拉致の可能性があり、日本軍占領時期のオランダ領のインドネシアのように各種の圧迫、懐柔そして直接的な強要の組み合わせであるかも知れないですが、その本質は同一です。 

即ち、国家(軍隊:国家のひとつの組織体)によって制度化された女性に対する性暴力です。いわゆる国家的な制度化された強姦です。しかし、戦時強姦はすでに17世紀以降の国際法で厳重に禁止されています。

慰安婦問題の研究者でおありのパク・ユハ教授はこの問題を門外漢である私よりよくご存知のはずでしょうが、すでにオランダ国際法創始者ユーゴ・クロティウスは戦時強姦を最悪な戦争犯罪として扱いました。

 その次に第1次ジュネーブ協約(1864年)とヘア(ハーグ)協約(1899年)の内容をご覧になれば、そこには
“crimes against women’s chastity and honour” (女性の貞節と名誉に対する犯罪)など明示的に出ています。もちろん、その時代の家父長的な言語ではありますが、とにかく近代法体制からみて日本軍の慰安所設置と慰安婦の性奴隷化は明らかに文字そのままに「犯罪」であっています。
オランダが日本が占領したインドネシアをもう一度再占領したときに慰安所の設置に責任のあった日本の将校たちは現地で戦争犯罪人として起訴、裁判をして実刑を与えた前例があります。

 問題はこれです。白人女性を性奴隷化させた日本の将校たちはその犯罪の対価として命を差し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きもありました。しかし、一方で非白人占領地女性(中国、フィリピン)あるいは非白人植民地女性(朝鮮人)を性奴隷化させた戦犯たちはどうでしょうか?

私たちは今、最大限に要求しているのも実際には「責任者の処罰」でもなく「国家特別法制定」、「国家の名においての賠償」、「教育など再発防止」程度ではありませんか?

 アウシュビッツで少しだけでも勤務していたナチ戦犯は、どんなに百歳の高齢者になろうとも摘発してすぐにアメリカなど事後的に取得した国籍は無効になり、そのまま裁判所に連れていかれます。原則上戦犯たちに対する時効はありません。原則上。
 問題は、非白人女性たちへの戦争犯罪を犯した先進国(?)日本国籍の戦犯たちにこの原則は事実上、適用さ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はほんとうに極悪な世界に生きていませんか?
もちろん批准当時、朝鮮などの植民地を例外に置くという巧妙な但し書きを付けましたが、慰安所は朝鮮/台湾/遼東以南ではない他の場所に位置していた以上、どんな巧妙な但し書きを付けたとしても原則上、批准したくらいの責任を果たすべき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とにかく、誰がみても国際法体制では日本軍の行為は時効のない戦犯行為であるのは間違いありません。ただし、事実上植民地女性に対する戦争犯罪が処罰されていない極度の不平等と違法的な私たちの世界の体制が問題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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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パク・ユハ教授は次のように主張されます。「日本が被害者の要求を拒絶した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が、アジア女性基金は国家的補償の意味を込められる補償であったと多くのページを割愛し書きました。基金に込められた日本政府と『普通の日本人』の心とその補償を受けた60人のハルモニたちの選択が無視されるような理由を説明お願いしたいです。」

 この主張は上の話しと照らし合わせたときに大きな問題を抱えています。慰安婦という言葉は日本軍の行為が近代国際法的意味での「国家の戦争犯罪」なら「官民合同の基金」をもってそのどんな「解決」も原則的に不可能であります。
 「犯罪」に対する本当の解決方法とは本来なんでしょうか?たとえ犯人が捕まらなかったとしても不在裁判だとしても「判決」が出なければ犯罪が解決するも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慰安婦犯罪の解決だけなぜ違わないといけないでしょうか?これが国家犯罪である限りここでは過去の日本国の犯罪行為に対する今日の日本国首脳および国会などの法的判断がなければいけないし、「官民」の形態ではない国家からの賠償が必要となります。

 3.パク・ユハ教授は次のように主張されます。
「現代日本で存在するそのような人々との連帯が重要であるなら、非人間的なシステムの中で、それでも人間的に努力した過去の彼らの行為と記憶は無視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はありません。なによりもそのようなことを思い浮かばせるのは、免罪するためではなく、支配と暴力の記憶を浮かんでくる一方で赦しの力を育てるためです。その赦しは日本のためではなく私たち自身のためであります。憎しみというトラウマから解放されるためなのです。」

現在の日本人だろうが韓国人だろうが、一番いいことは犯罪組織である日本/韓国などの「国家」の過去のヤクザ(組織暴力)行為に対する法的で厳重な処理です。なぜならば、そのような処理が一度でもあるならば、次の国家暴力組織(軍隊など)従事者たちを少し行儀よくなってもう一度似たようなことを犯す前に二度ほど考え込むでしょう。
 パク・ユハ教授はいったい慰安婦はるもにや私たちすべてに誰を「赦せ」というのでしょうか?個々人としての日本人を?両親のある日本の方がナヌムの家でボランティアしたり、日本で慰安婦問題を本当に解決するめに闘ったりされていることはみなが知っていることであり、慰安婦はるもにたちが個々人の日本人に対して賠償要求をしようとする訳でもないことも周知の事実です。
個々人として日本人および韓国人の間は「赦す/される」ことも別になく、お互いうまく連帯もしていて、両方の国家/企業が喧嘩すればいいだけで、この問題とは関係のないことです。ここで問題の対象は日本国という「国家」でしょう。日本国を赦せというのでしょうか。
日本だろうが韓国だろうが似たような水準の事実上のやくざ組織なのにその組織を「赦し」て、その組織と「和解」するというのはどんな意味を内包しているのか、分かりそうで分からないことです。国家を愛せよというならば明らかに、すでに国家主義という判断になるのに、国家を愛せよと、国家を許せとはそう変わらないものでしょう。
 やくざ組織という言葉があまりにも酷すぎると感じるかもしれませんが、大韓民国も日本国もその外部者的な被害者たちに対しての態度をみれば・・・他の表現が見当たりません。大韓民国の場合、その軍人たちが虐殺と強盗、強姦を犯したベトナムの村で建てられた憎悪碑たちを、金をあげるから撤去しろと、現在、密かに要求しているじゃないですか。
 金を少しやるからゆるしてくれと和解しろと、ベトナム被害者たちの子孫たちがそんな国家をほんとうにゆるすとお思いでしょうか?日本国が大韓民国と違うところは?お金がより多額で、またアメリカと手を組んで犯した犯罪ではなく、一時的にアメリカと戦って犯した犯罪であるから、大韓民国より言い逃れするのが少し難しいでしょう。アメリカなど交戦した国の世論も注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から。
 だから、「金をやるから憎悪碑をなくせ、この東南アジア野郎ども」よりは少し高尚な(?)様相をみせているのでしょう。「基金」をつくり「総理の手紙」のような格式ばったものを用意する振りもしてみて、金もより多額で、個人別に渡して、そして続けて世界体制の周辺部に対する各種の犯罪行為をご飯を食べるかのようにするという次元では・・・私たち大韓民国と日本国はまるで兄弟でしょう。一卵性双生児のような。
 やくざ国家日本国をゆるして、という言葉は結局、やくざ国家大韓民国に対するなんらかの「肯定的受容」を意味したりもします。他はわかりませんが、進歩とはとても無関係な話でしょう。
ずっと横暴を続ける強者に「ゆるせ」と弱者に話す以上の暴力があるでしょうか?私がなぜパク・ユハ教授の主張に到底、まったく同意できないのか、パク・ユハ教授はよく理解してくださるよう願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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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朴露子パクノジャ(写真)


지난 번 글
(관련 글 링크)에 대해서, 저는 며칠 전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글 (관련 글 링크)을 접했습니다.
이 반박글에서 박유하 교수가 제기하신 일부 문제 – 특히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 – 에 대해서는, 저는 차후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차차 보다 상세한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서 일단 일반론부터 펴볼까 합니다. 즉, “위안부”라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한 번 사고해보고, 박유하 교수가 이야기하시는 “용서와 화해”의 이면에 얼마나 끔찍한 국가주의적, 폭력적 사고가 도사리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박유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십니다: “제가 <국가배상>요구가 어렵다고 한 이유는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범죄`로서 물을 ‘법’ 자체가 근대국가시스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성중심의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릅니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위안부 징발의 형태는 조선에서처럼 주로 취업사기와 황군을 배경으로 하는 인신매매일 수가 있었으며, 비율빈(필리핀) 내지 중국처럼 노골적 납치일 수 있었으며 일본군 점령 시기 화란국령(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처럼 각종 압박과 회유, 그리고 직접적 강요의 조합일 수도 있었지만,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바로 국가 (군대: 국가의 하나의 조직체)에 의한 제도화된 여성에 대한 성폭력입니다. 말하자면 국가적인, 제도화된 강간이죠. 그러나 전시 강간은 이미 17세기 이후로는 국제법에서 엄중하게 금지돼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연구자이신 박유하 교수는 이 문제의 문외한인 저보다 더 잘 아실 일입니다만, 이미 17세기의 화란국 국제법 창시자인 위고 그로티우스는 전시 강간을 최악의 전쟁범죄로 다루었습니다.

그 다음에 제1차 제네바 협약 (1864년)과 해아 (헤이그) 협약 (1899년)의 내용을 보시면, 거기에서 “crimes against women’s chastity and honour” (여성의 정절과 명예에 대한 범죄) 등은 명시적으로 나옵니다. 물론 그 시대의 가부장적 언어지만, 좌우간 근대 법 체제로 봐서는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의 성노예화는 분명히 문자 그대로 “범죄” 맞습니다.

 화란국이 일본이 점령한 인도네시아를 다시 되찾아 재점령했을 때에 위안소 설치에 책임 있었던 일본 장교들을 현지에서 전쟁범죄로 기소, 재판하여 실형을 준 전례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백인 여성을 성노예화시킨 일본 장교들은 그 범죄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한데 비백인 점령지 여성 (중국, 비율빈) 내지 비백인 식민지 여성(조선인)을 성노예화시킨 전범들은 어떤가요?

우리는 지금 최대한으로 요구하는 것도 사실 “책임자 처벌”도 아니고 “국가 특별법 제정”, “국가 이름으로의 배상”, “교육 등 재발 방지” 정도이지 않습니까?
 
 아우슈비츠에서 잠깐이나마 근무한 적이 있는 나치 전범은, 아무리 백세의 고령자가 돼도 적발 즉시 미국 등 사후적으로 취득한 미국 등의 국적이 취소되고 바로 재판소에 끌려갑니다. 원칙상 전범들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습니다. 원칙상.

문제는, 비백인 여성들에게 전쟁범죄를 저지른 선진국(?) 일본 국적의 전범들에게 이 원칙은 사실상 적용되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는 참 나쁜 세계에서 살지 않습니까?

참고로, 조선 여성 위안부의 징발이 주로 인신매매 형태이었다면, 일본은 국제 여성 인신매매 방지 조약(관련 글 링크)에 사인한 만큼, 알고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비준 당시 조선 등 식민지를 예외로 두는 교묘한 단서를 달았지만, 위안소는 조선/대만/요동 이남이 아닌 다른 곳에서 위치한 이상, 아무리 교묘한 단서를 달았다고 해도 원칙상 비준을 한 만큼 책임도 져야 하지 않았을까요?

좌우간, 누가 어떻게 봐도 국제법 체제로는 일군의 행위는 공소시효가 없는 전범행위에 해당되는 건 맞습니다. 단, 사실상으로 식민지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가 처벌되어지지 않는, 극도로 불평등하고 위법적인 우리 세계 체제가 문제입니다.

2. 박유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십니다: “일본이 피해자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하셨는데, 아시아여성기금은 국가적 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보상이었다고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썼습니다. 기금에 담긴 일본정부와 ‘보통 일본인’의 마음과, 그 보상을 받은 60분의 할머니들의 선택이 무시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주장은 위에서 이야기한 부분으로 비추어봤을 때에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위안부라는 이름의 일군의 행각이 근대 국제법적 의미의 “국가의 전쟁범죄”라면 “관민 합동의 기금”을 가지고 그 어떤 “해결”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범죄”에 대한 진정한 해결방법은 본래 뭘까요? 비록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재재판이라도 해서 “판결”이 나와야 범죄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까? 위안부 범죄는 과연 왜 달라야 할까요? 단 국가범죄인 만큼, 여기에서는 과거 일본국의 범죄 행각에 대한 오늘날 일본국 수반 및 국회 등의 법적 판단이 있어야 될 것이고, “관민” 형태가 아닌 국가로부터의 배상이 필요합니다.

국가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결국 미래의 국가범죄가 또 저질러질 토양을 만들어내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으신 분들의 선택이야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어려운 조건에 처해진 개개인의 선택은 개개인의 선택이고,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3. 박유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십니다: “현대 일본에 존재하는 그런 이들과의 연대가 중요하다면 비인간적인 시스템속에서 그나마 인간적이려 노력했던 과거의 그들의 행위와 기억이 무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일들을 떠올리는 것은 면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와 폭력의 기억을 떠올리는 한편으로 용서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 용서는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미움이라는 트라우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지요.” 

현재의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가장 득을 볼 것은 범죄조직인 일본/한국 등 “국가”의 과거 깡패행각에 대한 법적인 엄중한 처리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 그런 처리가 있은 다음에 국가 폭력 조직 (군대 등) 종사자들이 약간 버릇이 좋아져 다시 한 번 비슷한 류의 짓을 저지르기 전에 두 번 생각해본단 말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일본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최악의 적은 바로 일본/한국 국가인 만큼 국가에 너그럽다는 것은 그 인민에 대한 가혹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드디어 “핵심 문제”로 도달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도대체 위안부 할머니나 우리 모두에게 누굴 “용서”하라 하십니까? 개개인으로서의 일본인을? 양심 있는 일본 분들이 나눔의 집에서 봉사하시기도 하고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 하시는 것은 다들 아는 일이고, 위안부 할머니 분들은 개개인의 일본인에 대한 배상요구를 하시는 게 아니라는 점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개개인으로서의 일본인 및 한국인 사이는 “용서”할 일도 따로 없고, 서로 연대를 잘해서 양쪽 국가/기업과 싸우면 될 일이고, 이 문제와 관계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문제의 대상은 일본국이라는 “국가”죠. 일본국을 용서하라는 것입니까?

일본국이든 대한민국이든 비슷한 수준의 사실상의 깡패조직인데 그 조직을 “용서”하고, 그 조직과 “화해”한다는 건 도저히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 알다가 모를 일입니다. 국가를 사랑하라 하면 분명히 당장에 국가주의로 판단이 나올 터인데, 국가를 사랑하라는 말이나 국가를 용서하라는 말이나, 과연 그렇게 다른가요?

깡패조직이란 말이 지나치게 심한 걸로 느껴질 수 있지만, 대한민국도 일본국도 그 외부자적 피해자들에 대해 취해온 태도를 보면…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같으면, 그 군인들이 학살과 강도짓, 강간을 저지른 월남의 마을에서 지어진 증오비들을, 돈을 주면서 철거하라고 지금 은근히 요구하잖아요.

돈을 조금 줄테니까 용서를 하고 화해하라고. 월남 피해자들의 후손들이 그런 국가를 정말 용서할 일은 있을 것 같습니까? 일본국이 대한민국과 다른 점은? 돈은 훨씬 더 많고, 또 미국과 손잡아 저지른 범죄가 아니고 일시적으로 미국과 싸우면서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대한민국보다 발뺌하기가 조금 힘듭니다. 미국 등 상전 나라 여론도 주시해야 하고 해서요.

그러니까 “돈을 줄테니 증오비를 없애라, 이 동남아 새끼들아”보다 약간 고상한(?) 모양을 취해보는 거죠. “기금” 만들고 “총리 편지”와 같은 격식을 차리는 척도 해보고, 돈도 보다 많이, 개인별로 주고…그러나 범죄를 범죄라고 부르지 않고 책임자 처벌 등을 아예 외면하고 국가적인 법적 해결을 회피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세계체제 주변부에 대한 각종 범죄행각을 밥 먹듯이 하는 차원에서는…우리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호형호제죠. 일란성쌍둥이.

깡패국가 일본국을 용서하라는 말은 결국 깡패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어떤 “긍정적 수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른 걸 몰라도 진보와는 아주 무관한 이야기죠.

계속 횡포를 부리고 있는 강자를 “용서”하라고 약자에게 이야기하는 이상의 폭력이 있을까요? 제가 왜 박유하 교수의 주장에 도저히 전혀 동의할 수 없는지 박유하 교수님께서 잘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出典
http://www.redian.org/archive/71889

群馬県高崎市の県立公園「群馬の森」の朝鮮人追悼碑をめぐり、設置者の「追悼碑を守る会」が集会で日本政府を批判する発言をしていた問題で、県が守る会に対し、碑を自主的に公園の外に移転するよう要請する方針を固めたことが5日、分かった。

 今週中にも守る会に伝える。碑の設置許可期限はすでに今年1月末で切れており、同会が要請を受け入れて自主移転しなければ、県は許可を更新しない判断を下すとみられる。

 追悼碑は平成16年に「政治的行事および管理を行わない」などの条件付きで県が設置を許可。しかし、同会は24年まで毎年、碑の前で集会を開き、政府を非難する発言を繰り返した。県議会には設置許可取り消しを求める請願が県内団体などから3件提出され、今年6月の本会議でいずれも賛成多数で採択されていた。

 大沢正明知事は採択後、「県民の憩いの場である公園にあるべき施設なのか問題がある」。今月2日の定例記者会見では「やみくもに議論を長引かせるつもりはない」と、早期に判断を下す考えを示している。


http://news.livedoor.com/article/detail/9013502/



さいあくだ。どんどんこの国の右傾化は、実際の軍事力強化と歴史修正主義により朝鮮人への数々の抑圧、蹂躙の歴史を忘れ、開きなおりの上で、清々しく国を誇れる?ようにしているのか。
  政府を批判することは悪いことなのだろうか。それは歴史修正に加担してもいいというものだろうか。もはや市民レベルでの、公共性からの日本批判や日本の加害の歴史の責任追及も現在の差別・弾圧行為への抗議さえも「反日」と片付けられ、排除が正当化さるような空気になっている。
 ほんとうにどうしようもない右傾化だ。その上で、集団的自衛権行使容認の閣議決定も同じ、この無反省で暴力的な右傾化の流れの一つの帰結であるだろう。その流れの中には、在特会などレイシスト団体が跋扈し、「救う会」はおなじみの高度なレイシズムでもって、本来の運動目的も忘れて、朝鮮人に暴力をふるい、歴史修正主義と反日狩りの先兵になっていることももちろん含まれる。加害と被害が逆転するさいあくな現象だ。
 救う会の高度なレイシズムとは、直接的な侮蔑を必要とせず、民族の求心を担っていたある民族団体とその所属の朝鮮人を引き離すかのような言い回しで、間接的には朝鮮人差別の土壌を再生産したり、歴史修正主義に加担したり、右傾化を支持することだけでなく、分断国家を祖国にもつ朝鮮人に新たな分断を持ち込み、同化と同調を迫る技法に長けたレイシズムのことである。
 群馬の右翼・保守市民団体が動き、最終的に「救う会群馬」が「朝鮮総連憎し」という、その高度なレイシズムによる請願提出によって、異例の提出された3つの撤去を求める請願すべてが可決、群馬県は今週内に朝鮮人追悼碑の自主撤去を要請するという結果になった。端的にいえば、公共性における政治は、歴史修正主義の波に負けたのだ。
 この碑を建てた群馬県朝鮮人・韓国人強制連行犠牲者追悼碑を守る会は、HPをみると2004年建立の時から県側との様々な葛藤があったようだ。
 下記の、追悼碑を守る会のHPはほんとうに素晴らしい調査資料が豊富で、その労力に脱帽する。

 群馬県朝鮮人・韓国人強制連行犠牲者追悼碑を守る会HP  
 http://akagi-nanroku.net/

 このまま、朝鮮人追悼碑も強制連行の史実をうやむやに消し去る、忘却の暴挙を許す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群馬県に強く抗議したい。

群馬県 群馬県庁の代表電話番号
 027-223-1111

群馬県 県土整備部都市計画課
 〒371-8570 前橋市大手町1-1-1
 電話 027-226-3651
 FAX 027-221-5566

 keikakuka@pref.gunma.lg.jp 

<ヘイトスピーチ>子どもの心の深い傷「差別許さない」判決


京都朝鮮第一初級学校(現・京都朝鮮初級学校)を運営する京都朝鮮学園がヘイトスピーチで名誉を傷付けられたとして、「在日特権を許さない市民の会」(在特会)と会員らに計3000万円の賠償などを求めた訴訟の控訴審判決が8日、大阪高裁であった。森宏司裁判長は「在日朝鮮人を嫌悪・蔑視する発言は下品かつ低俗で、強い違法性が認められる」と述べ、在特会と会員ら8人に計約1220万円の支払いなどを命じた1審判決を支持、在特会側の控訴を棄却した。在特会側は上告する方針。

 午前11時過ぎ、大阪高裁の202号法廷。判決が言い渡されると、約90人で埋まった傍聴席から拍手が湧き起こった。朝鮮学校の関係者はガッツポーズし、「よし」と言って喜んだ。

 「子どもたちの静かな日常を奪われた怒りを分かってほしい」。長女が京都朝鮮第一初級学校5年生だった朴貞任(パク・チョンイム)さん(46)はこの日、ヘイトスピーチへの厳しい司法判断を期待して裁判所に足を運んだ。

 2009年12月4日のことだった。在特会の会員らが学校前に姿を見せた。拡声機を使って怒声を浴びせる街宣活動は1時間近く続いた。「怖い」「学校に行きたくない」。学校にいた子どもの心に深い傷が残った。

 我が子の笑顔を取り戻そうと、保護者たちは登下校時に見守ったり、校内行事などを通じて励ましたりしたが、傷は今も癒えていないという。判決後、朴さんは「自分たちの主張が全て受け入れられて、今はほっとしている」と目を潤ませた。

 在特会による街宣の際、子ども3人の保護者で現場に駆け付けた龍谷大法科大学院教授の金尚均(キム・サンギュン)さん(47)は、がなり立てるような怒号が今も耳から離れない。「今回の出来事が日本人と在日朝鮮人が共にどう生きていくのか、語り合うきっかけになれば」と話した。

 閉廷後、大阪市内で記者会見した原告の京都朝鮮学園(京都市)、孫智正(ソン・チジョン)理事長(57)は「在日コリアンに対する差別や偏見に影響されることなく、正義を貫徹した裁判官に感謝と敬意の念を伝えたい。今回の判決が、差別を許さないという日本社会の動きを後押しすることを期待する」と語った。

 弁護団の冨増四季(とみます・しき)弁護士(京都弁護士会)は「日本での朝鮮学校の民族教育についても法的保護の対象であると認定しており、1審判決より踏み込んだ判断となっている」と評価した。

 ◇在日特権を許さない市民の会

 2006年12月設立。在日韓国・朝鮮人の特別永住資格などを「在日特権」と呼んで廃止すべきだと主張、街宣活動の動画をネットに投稿している。ホームページによると、全国35カ所に支部があり、会員は約1万4500人。

http://headlines.yahoo.co.jp/hl?a=20140708-00000050-mai-soci


在特会に二審も賠償命令=朝鮮学校への街宣禁止-ヘイトスピーチ訴訟で・大阪高裁

朝鮮学校周辺での街頭宣伝活動で授業を妨害されたとして、学校を運営する京都朝鮮学園が「在日特権を許さない市民の会」(在特会)と会員ら9人に街宣活動の禁止と損害賠償を求めた訴訟の控訴審判決が8日、大阪高裁であった。森宏司裁判長は、学校の半径200メートル以内の街宣禁止と約1226万円の支払いを命じた一審京都地裁判決を支持し、在特会側の控訴を棄却した。


 人種や国籍などで差別するヘイトスピーチ(憎悪表現)に対する高裁の判決は初めて。在特会側は最高裁に上告する方針。
 森裁判長は、在特会の街宣や、その様子をインターネット上で映像公開したことについて「在日朝鮮人をわが国の社会から排斥すべきと公開の場で主張し、映像を拡散させて被害の再生産を可能とした」と批判し、「社会的な偏見や差別意識を増幅させる悪質な行為」と述べた。
 また、朝鮮学校の被害に関し「民族教育を軸に据えた学校教育の場として形成された社会的評価が低下させられ、教職員らの心労や負担も大きかった」と指摘。学校の移転先での街宣禁止についても、「在日朝鮮人の人格を否定し、差別意識を世間に訴えることに(街宣の)主眼がある。新校舎周辺でも不法行為の恐れがないとは言えない」として認めた。(2014/07/08-13:14)

<ヘイトスピーチ>子どもの心の深い傷「差別許さない」判決


 
運動。社会運動には必ずついてくる「当事者」と「支援者」の二分法や「当事者」搾取・利用・消費という問題。さらに過度な干渉と理想をぶつけてくる「支援者」への批判としての「当事者」至上主義といった過度な防衛態度と、「当事者」至上主義を掲げる「支援者」がさらに「当事者」を搾取・利用するという帰結、運動理念の喪失、その繰り返しによる理念対立と対立構造から生まれる外部からの搾取と運動の衰退など、運動のなかで何度も経験しそうな中で、重要なことに気づかされるエッセイとして、下記の記事を翻訳します。 
 私もパク・ユハ氏の『帝国の慰安婦』に関して批判的に見ています。まず帝国日本の戦争犯罪で、人道上の犯罪である戦時性奴隷制である「慰安婦」問題に対して、日韓という両国間の政治的な関係に矮小化し論じているところなどですが、それはまた別なところで、詳しく論じます。 
 被害の「当事者」を固定化し易い、運動の論理は批判されて当然でありますが、固定的な存在、簡単な被害図式や心理によっては説明つくすことのできない流動的存在こそが私たち人間であるという前提にたちながら、問題解決の「当事者」として、「当事者」性の境界と侵犯について慎重に考えながら、「当事者」との関係をどのように紡ぐか、参加している自分はどの文脈で当事者性を帯びるのかを考え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強く思います。
 そして、過去の問題は常に現在の問題として現前し、未来へ繋げるのものとして、私たちの現在であるし、現在を生きる私たちの責任である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ことから、社会をみつめ、さまざまな問題の原因である悪しき構造を批判し、具体的な解決を模索しながら、社会を変えなければいけないと思います。私たちの力で。
(もちろん、そもそも多くの問題が、とくにこの「慰安婦」被害者の方々は、今でもご存命の方が多くいらっしゃることを、そして、残された時間が少ないことを忘れては、いけません。)


[세상 읽기] ‘현재’를 묻는다는 것 / 후지이 다케시【世界を読む】「現在」を問うということ/藤井毅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藤井毅 歴史問題研究所 研究室長

さいきん、話題になっている『帝国の慰安婦』を今となって読んでみた。さまざまな感想を抱いたが、一番問題と感じたのは「運動」を見つめるパク・ユハ(著者)の観点であった。「日本の支援運動」が「政治化」され「帝国日本」だけでなく、「現在の日本」まで批判す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指摘をしながら、著者は次のように話す。「慰安婦問題の解決が困難だったのは、ずばりそのような方法で、運動が『現在』を問う運動になったせいである」と壁にぶつかったような感じであった。

 私が1990年代日本で「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の運動に参加するきっかけとなったのも、まさにそのように現在を問う運動だと考えからだった。もちろん、「日本軍慰安婦」という存在自体は過去に属した問題であるが、「慰安婦問題」は現在の問題である。そして、現在という時間の中で私もこの問題を知ることができた。すなわち、私は現在という時間を媒介に慰安婦問題に出会えたのだ。著者は過去と現在を分離する理由を帝国日本と戦後日本の断絶を強調する立場からそうしているように見えるが、この問題を過去の問題というだけで扱うときに、これを媒介にした現在、言い換えれば「私たち」を可能にする現在は消えてしまう。残るのは、専門家による真実を究明しなければならない過去の「慰安婦」だけだ。

 このように過去と現在の分離を支える論理が、「当事者」と「支援者」という二分法である。著者は「結局、支援者たちを意図するものではなかったとしても慰安婦問題支援運動は問題解決そのものよりも『日本社会の改革』という左派理念を重視する方に傾いた。そこでも「慰安婦」はこれ以上『当事者』であ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ような当事者性の問題を提起する。この評価は国民基金(アジア女性基金)が正解だったという前提の上でなされたものなので、その妥当性にも問題があるのだが、それより大きな問題は「慰安婦問題」を「慰安婦当事者」だけの問題として制限しようとするパクの視線である。「当時、支援者/団体が天皇制廃止を方向づける『日本社会の改革』の志向よりも、慰安婦問題だけに集中していれば慰安婦問題の解決は可能だったかもしれない」という評価は、このような視線の問題をよく見せてくれる。結局は純粋な支援運動ではなかったせいで失敗したという話だ。このような論法の問題性は今の韓国社会の脈略のなかで見れば、より明確になる。

4・16(セウォル号惨事)以降現在まで続く、大規模な集会を批難するときによく使われる言葉として「セウォル号を政治的に利用するな」がある。「パク・クネ大統領退陣」を掲げて、青瓦台(大統領府)に向かおうとする彼らは、「純粋な追悼ではない別の意図」を持つ存在として描き、分断しようとする試みは言論を通じて繰り返されている。それでも多くの人たちが街へ出る理由は、彼らが「当事者」であるからだ。

1990年代から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に展開された運動の当事者はやはり「慰安婦はるもにたち」だけでない。当事者と支援者という二分法は運動のなかで形成される「私たち」を打ち破って各自の位置をまた固定させる。そうしながら当事者の運動の成果を判定基準になり、支援者はその成果のために奉仕する存在になってしまう。ここで新しい社会は生成されない。

〈帝国の慰安婦〉は重要な省察を含んでいたりもする。慰安婦問題を通じて、(米軍)基地村(における独裁政権時の管理売春被害の問題)を考え、資本の問題を提起する観点は重要である。それにも関らず、「慰安婦問題を本当に解決したければ、基地問題を解決しなければならないし、そのためには日本との和解が必要だ」と、すなわち米軍基地問題を解決するために日本と和解しようというとんでもない主張が提示されるのは、どんな論理だろうか?それはどのような当事者か?
     
                               藤井毅歴史問題研究所室長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를 이제야 읽어보았다. 여러 느낌이 들었지만, 가장 문제로 느껴진 것은 ‘운동’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었다. ‘일본의 지원운동’이 ‘정치화’되어 ‘제국 일본’만이 아니라 ‘현대 일본’까지 비판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어려웠던 것은 바로 그런 식으로, 운동이 ‘현재’를 묻는 운동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벽에 부닥친 느낌이었다.
 내가 1990년대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 현재를 묻는 운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군 위안부’라는 존재 자체는 과거에 속하지만 문제로서의 ‘위안부 문제’는 현재의 문제다. 그리고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나도 이 문제를 알게 되었다. 즉, 나는 현재라는 시간을 매개로 위안부 문제를 만난 것이다. 저자가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는 까닭은 제국 일본과 전후 일본의 단절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문제를 과거의 문제로만 다루게 될 때, 이 매개로서의 현재, 바꿔 말해 ‘우리’를 가능케 하는 현재는 사라진다. 남는 것은 전문가에 의해 진실이 규명되어야 할 과거의 ‘위안부’뿐이다.
 이와 같은 과거와 현재의 분리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당사자’와 ‘지원자’라는 이분법이다. 저자는 “결국, 지원자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 지원운동은 문제 해결 자체보다 ‘일본 사회의 개혁’이라는 좌파 이념을 중시한 셈이 되었다. 그곳에서도 ‘위안부’는 더이상 ‘당사자’일 수 없었다”는 식으로 당사자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평가는 국민기금이 정답이었다는 전제 위에서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그 타당성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위안부 문제’를 ‘위안부 당사자’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그의 시선이다. “당시 지원자/단체가 천황제 폐지를 향한 ‘일본 사회 개혁’의 지향보다 위안부 문제 자체에만 집중했다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는 그런 시선을 잘 보여준다. 결국 순수한 지원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논법의 문제성은 지금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 놓고 보면 더 분명해진다.
4·16(세월호 참사)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대규모 집회를 비난할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은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다. ‘박근혜 퇴진’을 내걸거나 청와대로 향하려고 하는 이들을 ‘순수한 추모가 아닌 다른 의도’를 가진 존재로 그려내 분리시키려는 시도는 언론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는 이유는 그들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개된 운동의 당사자 역시 ‘위안부 할머니들’만은 아니다. 당사자와 지원자라는 이분법은 운동 속에서 형성되는 ‘우리’를 깨고 각자의 위치를 다시 고정시킨다. 그러면서 당사자는 운동의 성과를 판정하는 기준이 되며 지원자는 그 성과를 위해 봉사하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새로운 사회는 생성되지 않는다.
<제국의 위안부>는 중요한 성찰을 담고 있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를 통해 기지촌을 사유하고 또 자본의 문제를 제기하는 관점은 중요하다. 그런데도 결론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기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화해는 필요하다”는, 즉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화해하자는 엉뚱한 주장이 제시되는 이 괴리는 무엇일까. 그는 어떤 당사자인가?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4587.html

【現代の赤紙?】集団的自衛権行使容認の閣議決定後、自衛隊がいっせいに学生たちに募集を送ってきた。

 集団的自衛権の行使容認の閣議決定以降、高校3年生や中学3年生にその学生の宛名で自衛隊募集案内の資料やはがきが届いたらしい。
手紙をもらった子どもたちがの戸惑いや怒り、驚き、嫌悪や嘲笑など様々な声をまとめている。

 ある学生は、これを暗黙の徴兵制じゃないかと指摘する声も、さらに自衛隊学校にいけば給料もらえるから行こうかなという声もある。
現実の子どもたちの生き生きとして、生々しい反応を注目したい。

しかし、なぜこの時期にいっせいに送られてきたのか。

 それはやはり集団的自衛権行使による、軍事がより密接なものであるというアピールかもしれない。募集して入るだけでなく、自衛隊と軍事的な事柄が生活により密接に浸透しているということのアピールの側面が強い。しつこい営業や訪問販売に物を買わされるように、おそらく何度も募集のアピールをしたり、直接的な勧誘、スカウトをするだろう。もう逃げられないくらい圧力をかけたり、自衛隊や軍事的なもの、「お国のため」や防衛(?)意識はすばらしいものとしてCM広告やメディアを総動員して、戦争を支持する価値観に人々を慣れさせるかもしれない。
   
7月1日公開されたAKBを起用した自衛隊募集のテレビCMの記事


そして、なぜ自衛隊は生徒たちに案内の手紙を送ることができたのか。

 それは手紙には、案内を読むと、住民基本台帳を元に来年3月に卒業する学生、つまり将来の進路を考える重要な時期の子どもたちに向けて発送しているということらしい。自衛隊は特別に文部科学省と厚生労働省のお墨付きで募集できて、自衛隊法120条【防衛大臣は、自衛官又は自衛官候補生の募集に関し必要があると認めるときは、都道府県知事又は市町村長に対し、必要な報告又は資料の提出を求めることができる】らしいので・・・個人情報保護とはなんだったのか・・・将来の子どもたちに省庁の連携で自衛隊募集とは恐ろしい。

 ほんとうに不気味でおぞましい空気が醸成されている気がする。

以下、自衛隊の一方的な募集・勧誘の案内資料、はがきを、名指しでもらってしまった生徒たちの反応の声をみてみたいと思う。
反応は本当にさまざまだ。しかし、なにかしら絶望を和らげる何かがみつかりそうである。

まだ選挙権を持たない、安倍政権を誕生させた責任を負っていない、
彼らの主体的な考えを尊重し、一緒に考え、話し合いながら絶望する前に何に怒り、何を訴えるべきか、考え伝えていきたい。


以下、引用 

NAVERまとめ↓

高3生に自衛隊の募集案内が、個人宛に続々と届く
http://matome.naver.jp/odai/2140429499827623501

・自衛隊から自衛官募集の案内が来たんだけど、赤紙が来た感じですごく不快。 今回のはただの案内だけど、近い将来きっと徴兵という形でこういう手紙が届くんだろうね。戦争なんて反対だよ… 

・集団的自衛権が承認された今日という日に届いた自衛隊からのお手紙。 これは偶然なんですかね。

・自衛隊から募集の要項が来た 他の人にも来てるみたいだけどこれって暗黙の徴兵制とも考えられないか 表面では募集要項だが...なんか手口が巧妙な気もする 去年の高校生にはこういうのきてたのかな? 

・受験がんばろうと意気込んでたら 自衛隊募集のハガキが届いてて辛いことがこの上ない

・おっと、自衛隊から名指しでお手紙が来たよ。 これが赤紙と呼ばれるアレか。

・自衛隊になりませんか?みたいハガキ俺のとこにもきたわww自衛隊になるための学校って給料もらえるし行こかな\( ˙-˙ )/

・自衛官採用説明会ね…… 自衛隊自体に興味があるし、入退場自由、予約不要、履歴書不要だし、言って話だけ聞いてみたいの

・自衛隊から手紙きた 俺が非国民だから殺されるのかな


・自衛隊の勧誘キターwwwwwwwwwwwwwwww

・自衛隊様からなんか届いた

・自衛隊から何か採用試験の案内とか届いたwww赤紙召集令だァァァァァァァ!!!!

・自衛隊採用試験案内の手紙きたけど 申し込んだ覚えがないしどういうこと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

・どうしよう。自衛隊から手紙来たんだけど。どーしよう。パイロットになろうかな(´・_・`)♡爆笑・あのあのあの、自衛隊から手紙来たんだけど?しかも俺、知三なのに三の漢字抜けてんだけど 自衛隊に名前間違われてるんだけど泣きたい

・自衛隊から手紙きたから俺もついに最終兵器になるっぽい(自衛隊の学校の勧誘) 

・ひどい。自衛隊から来た郵便の俺の名前間違ってる… 俺は優しくないよ(-_-) 

・郵便… 自衛隊から。 しつこい┐(´д`)┌ハイハイ
ついに、韓国、日本、アメリカによる軍事同盟が締結され、強固になりそうだ。
つまりはアメリカと日本、アメリカと韓国の軍事同盟(韓国の場合は完全な支配関係だが)だけでなく、
韓国軍と日本の自衛隊どうしの軍事協力、合同作戦、自衛隊の朝鮮半島上陸など可能になっていくかもしれない。
これが軍ではなく、なんだというのだろうか。
集団的自衛権行使容認の閣議決定後、安倍内閣は法整備に着手するというが、
日本は着実に戦争準備を、戦争のできる国の道を着実に歩んでいる。
記事を読めば分かるが、今後3国は、連合海上救助訓練(サレックス、2011年~)を合同で行うという。
しかし、集団的自衛権行使容認以降、自衛隊は海上救助訓練のみならず、
無理難題の法案を通過させて、合同軍事演習という軍事圧力と挑発を日本政府とメディアが差別を利用してさんざん煽った「仮想敵国」たちにかけて行くと思われる。

平和とはいともたやすく壊れていくようだ。
民衆はより抵抗と反対、平和の声を上げ続け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
ANTIFA★!!





  일 ‘전쟁가능’ 도발 판국에…군, 미·일과 ‘안보협력’ 회의
  日本「戦争可能」挑発のときに 韓国軍米日と「安保協力」会議


[일 집단적 자위권 결정][日本集団的自衛権決定]

일 집단적 자위권 결정 직후 한·미·일, 첫 합참의장 회의 ‘일본에 면죄부 주는 격’ 지적에 군 “허가없이 자위권 행사 불가” 해명

日本集団的自衛権決定直後、韓・米・日、初の合同参謀議長会議「日本に免罪符を与える」という指摘に、韓国軍は「許可なしでは自衛権行使不可」と釈明

韓・米・日三国合同参謀議長会議が1日(現地時間)アメリカハワイで開かれた。日本が集団的自衛権行使を決定した直後自衛隊首脳部と会同したのに続いて適切ではない様子だという指摘が出ている。

韓国のチェ・ユンヒ、アメリカのマーティン・テンプシ―合同参謀議長と日本の岩崎茂統合幕僚長はこの日会議を終え、共同報道文を出し、「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原文:北韓)の核ミサイルの脅威を含んだ地域安保環境の変化について論議し、地域の安定と平和推進の方案についての意見を出し合った」と明かした。合同参謀本部関係者は「何よりも朝鮮(*原文:北韓)の核問題がこれ以上看過できない問題であり、これを解決するためには韓・米・日3国が緊密に協調し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で3国合同参謀議長が意見を出し合った」と話した。

中国囲い込み(封鎖)を狙った3国間軍事・安保協力を象徴する今回の3国合同参謀議長会議は習近平中国国家主席の訪韓の直前に開かれ注目を浴びている。3国安保協力が強化されれば、中国の警戒心を刺激する場合、韓国の対中関係が犠牲になる観測のせいだ。

 また今回の会議が日本の7月1日の閣議において集団的自衛権を行使できるという方向に憲法を再解釈した直後に開かれ、韓国が事実上日本の集団的自衛権行使に対する免罪符を与えるような印象を生むことになるという憂慮も提起された。特に韓国が政府が積極的な対策を出していない状況での日本の集団的自衛権行使に対する政府の態度があまりにも消極的ではないのかという批判も出ている。

合同参謀はこれと関連して別の資料を出し、「チェ合同参謀議長がこの日の会で『日本の集団的自衛権行使が日本の防衛のための措置だとしても韓・朝鮮半島の作戦区域内の物理的軍事行動と韓・朝鮮半島作戦区域内の物理的軍事行動と韓・朝鮮半島作戦区域内に影響を与える行為に対してはいかなる場合でも韓国の要請と許可なしに行使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立場を明確に明かし、米国と日本もこれに同意した」と釈明した。チェ合同参謀議長はまた韓・米・日3国合同参謀議長の定例化論議と関連して先だって「日本の歴史認識に根本的な変化が必要だ」という立場を伝えたと明かした。

韓・米・日3国合同参謀議長が直接あって軍事懸案を論議したのは今回が初めてだ。今回の会議で環太平洋合同海上機動訓練(リムパック訓練)が6月26日から8月1日までハワイで行われたのを契機に準備された。米国主導のリムパック訓練は2年ごとに開かれる多国的軍事訓練で今年は中国が初めて艦艇4隻を送るなど22カ国が参加した。韓国と米国、日本は今回のリムパック訓練が終わった後、別に3国間の連合海上救助訓練(サレックス)を行う計画である。




한·미·일 3국 합참의장 회의가 1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에서 열렸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결정한 직후 자위대 수뇌부와 회동한 것이어서 적절치 않은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최윤희, 미국의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과 일본의 이와사키 시게루 통합막료장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공동보도문을 내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포함한 지역 안보환경 변화에 대해 논의하고 지역 안정과 평화 증진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무엇보다 북한 핵 문제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는 데 3국 합참의장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중국 봉쇄를 겨냥한 3국간 군사·안보협력을 상징하는 이번 3국 합참의장 회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열려 주목을 받았다. 3국 안보협력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경계심을 자극할 경우 자칫 대중 관계가 희생될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또 이번 회의가 일본이 1일 각의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헌법을 재해석한 직후 열려, 한국이 사실상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 같은 인상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과 맞물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합참은 이와 관련해 따로 자료를 내어 “최 합참의장이 이날 회의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일본의 방어를 위한 조치라도 한반도 작전구역 내의 물리적 군사 행동과 한반도 작전구역 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라도 한국의 요청과 허가 없이는 행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으며 미국과 일본도 모두 이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최 합참의장은 또 한·미·일 3국 합참의장 회의의 정례화 논의와 관련해 먼저 “일본의 역사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합참이 밝혔다.

한·미·일 3국 합참의장이 직접 만나 군사 현안을 논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회의는 환태평양 합동해상기동훈련(림팩 훈련)이 6월26일부터 8월1일까지 하와이에서 열리는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림팩 훈련은 격년제로 열리는 다국적 군사 훈련으로, 올해는 중국이 처음으로 함정 4척을 보내는 등 22개 나라가 참여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이번 림팩 훈련이 끝난 뒤 따로 3국간 연합해상구조훈련(사렉스)를 할 계획이다.



出典:韓国紙ハンギョレ新聞「日本「戦争可能」挑発のときに 韓国軍米日と「安保協力」会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645258.html?_ns=c3


関連記事:ハンギョレ日本語版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14717.html

上記のハンギョレ日本語版の記事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17729.html
日本国民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国際平和を誠実に希求し、国権の発動たる戦争と、武力による威嚇又は武力の行使は、国際紛争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永久にこれを放棄する。
前項の目的を達するため、陸海空軍その他の戦力は、これを保持しない。
国の交戦権は、これを認めない。


私は、集団的自衛権容認の閣議決定に反対し、つよく抗議します。


私は日本国民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法的な意味においても、自身の歴史的なアイデンティティにおいても朝鮮人ですが、日本に永住するとか、日本語が第一言語とか、関係なしに、自然権を保障された一個人として、平和のうちに生存する権利を持っていて、恒久的な平和を希求する一人の人間として、戦争に実践的に参加し、民主主義を崩壊させ、人々の信頼と生きる希望さえも奪う現政権と与党、自民党公明党が行なおうとする集団的自衛権容認の閣議決定に反対し、これにつよく抗議します。

上に青文字で書かれた言葉は、ご存知の通り憲法9条の条文です。現政権首相の安倍晋三は、「戦後レジームから脱却だ。」、「普通の国になる」などと言い、なんら民主主義的な手続きを踏まえず、この日本国における民主主義の根幹である憲法を形骸化させ、政府与党の力のみで、閣議決定という政策を打ち出し、この重要な平和を求める態度を潰そうとしています。

私たちはこの日本の憲法の条文と、戦後から今までの日本政府の戦争協力と自衛隊と駐日米軍の存在を鑑みて、この条文が現実からかけあまりにも離れているという事実を実感し、この条文が作られた歴史的な経緯と多大なる被害と犠牲さえも忘れてしまうくらいの途方を感じるかもしれません。

おそらく、今の権力者たちは平和憲法と現実の自衛隊や戦争協力の実績の乖離にある隙を、そのまま見せつけることで、そのような途方のない絶望を抱かせるのが大きな狙いだと思います。自らの国権を統治する者として、大きな力を見せつけるために、平和憲法を無理やりに解釈して、単なる建前や言葉だけの薄っぺらいものにすることで、さらに人々の平和に生きる希望を奪って、思考停止におとしいれようとするでしょう。

現実の生活と大きな政治的な決めごとがとてつもなく乖離していて、政治的な問題から離れることが無難な生き方で、ただただ合理主義的な価値観のなかで人々を飼い慣らすように、意のままにコントロールしようと考えるでしょう。

もはや現政権の思惑は、憲法をないがしろに形骸化させるだけでなく、絶望の隙に「戦争などたいしたことない」などと思わせて、人々の想像力を奪うことでしょう。そうすれば権力者たちと巨大な資本は、戦争をビジネスや新たな市場として開拓していいという免罪符が手に入り、今までより積極的に「戦争参加していい」という漠然とした雰囲気が強く醸成されてしまいます。

それにより世界中で多くの人々が、戦争と紛争によって殺されている現実への想像力と平和を望み、ただただ殺したくないという願いさえも奪うのが、今回の政府・与党自民党・公明党による集団的自衛権行使容認の閣議決定だと思います。

 だから、現在の日本政府、安倍政権が行なおうとする集団的自衛権の閣議決定は、政権自らがその手続きにおいても、目的と結果においても、強権的なファシズム、全体主義である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それを完遂することで、安倍政権はより人々の想像力と自由を奪い続け、強権的な政策をどんどん打ち出し、自らの思うがままに人々を隷属させるでしょう。

それは集団的自衛権での暴挙だけでなく、労働や生活環境、人々の連なり、生き方の価値観すべてにおいての自由を奪う結果に繋がると思います。実際に、ある自民党の議員が閣議決定後に「徴兵制」も視野に入れると発言しています。人を殺せと国家が命令すれば、それに従わなければいけない人々がどんどん出てきます。私はそんな社会はほんとうに嫌です。


だから、私は現在、集団的自衛権行使容認に反対する思いのすべての人々と連帯したいと思いながら、これに強く反対し、抗議したいと思います。
私は殺したくも、殺されたくもありません。

ファシズム政権に反対。

集団的自衛権反対。

すべての戦争に反対します。ANTIFA★!!!


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安らかにお眠りください。
必ずや、日本政府から謝罪を引き出します。

慰安婦被害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告別式「日本の謝罪、残った者たちが引き出します。」

韓国民衆メディア-民衆の声- 
http://www.vop.co.kr/A00000721892.html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실행이사인 정태효 목사는 故황금자 할머니 추도사에서 “할머니의 소망인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꼭 받아내겠다”며 “천국에서 큰 눈 부릅뜨고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実行理事であるジョン・テヒョ牧師は故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追悼辞で「はるもにの願いである日本の謝罪と賠償を必ず引き出す」と「天国ではるもにの大きい目を開いて見守ってください」と話した。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의 영결식이 28일 오전 10시 서울 강서구청 후정에서 엄수됐다. 고인의 영정과 국화로 꾸며진 영결식장에는 주최 측 추산 총 1,700여명이 모였다. 강서구민장 영결식에는 구청 공무원 700여명 외 지역 주민, 지역 의원,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들이 참가해, 황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日本軍慰安婦被害者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の告別式が28日午前10時ソウル江西区庁後庭にて行なわれた。個人の と菊で飾られた告別式場では主催者側推算で延べ1700名あまりが集まった。江西区民葬告別式には区庁公務員700名あまり他、地域住民、地域議員、市民社会団体関係者たちが参加し、ファンはるもにの最後の道を見守った。

오전 10시 정각, 검정 옷을 차려입은 영결식 참가자들이 할머니의 시신을 태운 영구차를 맞이 하기 위해 일제히 일어섰고, 차례로 묵념과 추도사, 헌화•분향을 이어나갔다.

午前10時、黒い服で身を整えた告別式参加者たちは、はるもにの遺体を乗せた霊柩車を迎えるため一同起立していて、黙祷と追悼辞、献花、ご焼香とつないでいった。

할머니의 소망 ‘일본의 사과와 배상’...“남은 이들이 꼭 이루겠습니다”
はるもにの願い「日本の謝罪と賠償」、、、「残った者たちが必ず実現させます」


황금자 할머니 구민장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조사에서 “할머니는 평생소원이었던 일본정부의 사과를 끝내 받지 못한 채 떠나시지만, 남아 있는 우리 모두가 할머니의 소원을 함께 이루어 낼 것”이라며 “편안한 하늘나라에서 부디 영생을 누리시기 비란다”고 말했다.

ファン・グムジャ区民葬葬儀委員会委員長を受けたノ・ヒョンソン江西区庁はあいさつで「はるもには結局、一生涯の願いであった日本政府の謝罪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に他界されたが、残っている私たち皆がはるもにの願いを一緒に実現させるはず」と「平穏な天の国で永生を送られることを願う」と話した。

정대협 생존자복지위원장 활동을 하면서 황 할머니를 자주 만난 정태효 목사는 추도사에서 “일본 우익들은 갈수록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욕되게 하고, 국내에서는 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을 부인하는 현실”이라며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려면 저희 곁에 할머니가 더 계셔주셔야 한다”며 고인을 원망하는 투로 슬픔을 전했다.

挺対協生存者福祉委員長活動をされながらファンはるもにとよく会っていたジョン・テヒョ牧師は追悼辞で「日本の右翼たちがますます慰安婦被害者はるもにたちを侮辱し、国内ではニューライト歴史教科書がはるもにたちの被害事実を否定するのが現実」として「日本の謝罪賠償を受けるには私たちの側にはるもにがもっと一緒にいてくださらなきゃ」と故人の死を悔しがる形で悲しみを伝えた。

이어 “남은 사람들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고, 또 일본의 전쟁 범죄 사실을 우리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가르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할머니, 천국에서 그 큰 눈 부릅뜨고 지켜봐달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続いて「残った人びとは日本の謝罪と賠償を引き出して、また日本の戦争犯罪を私たちの子どもたちに、あるがままに教えて、同じ事が繰り返さ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はるもに、天国で大きな目を開いて見守ってください」と最後の挨拶をした。

지역구 의원인 민주당 신기남(강서구갑) 의원은 추도사에서 “황금자 할머니의 소망은 일본의 사과 한마디였다”며 “그러나 조국은 할머니를 위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또 새누리당 김성태(강서구을) 의원은 “황금자 여사의 삶은 많은 이에게 큰 메시지를 준다”며 “할머니의 고귀한 뜻을 머리 숙여 본받자”고 호소했다. 강서구의회 박상구 의장은 “일본의 사과를 끝내 받지 못하고 영면한 고인을 보내는 참담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며 “할머니의 뜻은 역사에 길이길이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地域区議員である民主党シン・キナム(江西区甲)議員は追悼辞で「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の願いは日本の謝罪、一言であった」と「しかし、祖国ははるもにのために自らの役割を全う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反省した。またセヌリ党キム・ソンテ(江西区乙)議員は「ファン・グムジャ女史の生は多くの者たちに大きなメッセージをくれる」とし「はるもにの高貴な意を頭に刻み見習おう」と訴えた。江西区議会パク・サング議長は「日本の謝罪を受けられずに永眠された故人を送る悲惨さは言葉では言い表わせずすべてを表現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はるもにの遺志は歴史に長く輝いていく」と話した。

조사와 추도사가 끝난 뒤, 할머니의 양아들이자 상주인 강서구청 직원 김정환(49) 씨를 시작으로 추모객들의 헌화와 묵념 순서가 이어졌다. 김정환 씨는 강서구청 장애인복지팀장으로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인 황 할머니와 2002년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あいさつと追悼辞が終わった後、はるもにの養子で、喪主の江西区庁職員キム・ジョンファン(49)さんを始めとして参列者たちの献花と黙祷に続いていった。キム・ジョンファンさんは江西区庁障がい者福祉チーム長で基礎生活保障受給対象者であるファンはるもにとは2002年から格別な関係を維持してきた。

영결식이 끝난 오전 11시께, 할머니를 태운 영구차는 장지인 경기도 파주 삼각지성당 하늘묘원으로 향했다.
告別式が終わった午前11時に、はるもにを乗せた霊柩車は埋葬地である京畿道パジュ三角地聖堂ハヌル墓院に向かった。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 알려질까’ 대인기피증 앓던 황 할머니
...“강한 나라 만들어 그런 희생 다신 없길” 폐품 팔아 모은 1억여원 장학금으로 기부
「日本軍慰安婦であった事実が知られるかも」対人忌避症を患ったはるもに
…「つよい国をつくってそのような犠牲が二度と起きないように」廃品を売って集めた1億ウオンあまりにの奨学金を寄付。

고인은 1924년 함경도에서 태어나 지난 26일 오전 1시 30분께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노환으로 지난달 서울 강서구 등촌동 부민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가, 최근 건강이 악화돼 패혈증으로 숨졌다.

故人は1924年咸鏡道で生まれ去る26日午前1時30分に享年89歳で他界された。故人は老患で先月ソウル江西区ドゥンチョン洞ブミン病院に入院され治療を受けていたが、最近健康が悪化し、敗血症で亡くなった。

황 할머니는 13살 때 길을 가던 중 일본 순사에게 납치돼 함경남도 흥남의 한 유리공장에서 3년간 노역을 했다. 3년 뒤 간도로 옮겨져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광복 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식모살이와 폐품 수집 등을 하며 살았다.

ファンはるもには13歳のとき道を歩いていたら日本の巡査に拉致され咸鏡道興南のあるガラス工場で3年間労役した。3年後間島地方に移され戦争が終わるときまでに日本軍慰安婦生活をされた。光復後(終戦後)には故国に戻って来たが、家庭を設けることができず、家政婦生活と廃品回収などをして生活されてきた。 

말년에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빈 병과 폐지를 주워 팔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주어지는 생활지원금을 모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1억 원을 강서구장학회에 기부해, 2011년 국민훈장 동백상을 받았다. 또 할머니는 2011년에는 전 재산 5천여만원을 강서구장학회에 기부하겠다는 유언장을 쓰기도 했다.

末年には政府が支援する賃貸アパートで生活しながら空き瓶や廃紙を集め売り、基礎生活保障受給者に与えられた生活支援金を集めて2006年から2010年までに延べ1億ウォンを江西区奨学会に寄付し、2011年には国民勲章を受賞した。また、はるもには2011年には全財産の5千万ウォンを江西区奨学会に寄付すると遺言書をのこした。

양아들 김정환 씨 등에 의하면 황금자 할머니는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을 보고 일본 순사의 제복으로 착각해 고통스러워하고,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임이 알려질까 봐 낯선 이들을 피하는 심각한 대인기피증도 앓았다.

養子であるキム・ジョンファンさんたちによると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は中高等学生たちの制服をみて、日本の巡査制服と錯覚し混乱されたり、自身が日本軍「慰安婦」であることが知られるかもと恐れ、慣れない他人を避ける深刻な対人忌避症を患っていたという。

황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4명 중 생존자는 55명으로 줄었다.
ファンはるもにの他界によって韓国政府に登録された被害者234名の内生存者は55名に減った。




故 황금자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故 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の冥福を祈ります。


http://fb.me/6mjLDXFBq
挺対協(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FBページからの抜粋。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께서오늘(1월 26일) 새벽1시 30분에 91세의 연세로 운명하셨습니다. 빈소는 목동 이대병원 장례식 12호실이며, 발인은 강서구민장으로 진행하게 되며, 1월 28일(화요일), 천주교삼각지성당 하늘묘원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日本軍「慰安婦」被害者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はるもに할머니朝鮮・韓国語でおばあちゃん)が1月26日夜中1時30分91歳で他界された。通夜はモク洞梨大病院葬式12号室で、江西区民葬で進行され1月28日(火曜日)天主教三角地聖堂ハヌル墓院に埋葬される予定です。

할머니는 1924년에 함경도에서 태어나셨으며, 13세 무렵에 함경북도 흥남의 한 유리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3여년 뒤에 간도 지방에서 전쟁이 끝날때까지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하셨습니다.

はるもには1924年に朝鮮半島咸鏡道(北側)で生まれ13歳のころ 咸鏡北道興南のあるガラス工場で仕事をして3年後、間島地方(朝鮮と中国の国境あたり)で戦争が終わるまで日本軍「慰安婦」として生活されていました。

해방 후 일가친척 아무도 없는 이남에 정착하셔서 홀로 살면서 일본군'위안부' 피해 후유증으로 대인기피증으로 외롭게 살아오셨고,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여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하신 후에도 할머니는 공개활동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解放後(終戦後)家族親戚誰もいない南の地に定着され一人で生活されながら日本軍「慰安婦」被害後遺症で対人忌避症で孤独に生活され、うまく人を信じれず他人との関係を断絶されながら生きていらっしゃいました。日本軍「慰安婦」被害者として申告されてからもはるもには公開での活動はできずにいらっしゃいました。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할머니는 동네 폐지 등을 모아 팔아서 저금을 해오셨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활지원금도 쓰지 않고 모아두셨다가 2006년부터 강서구청 장학회에 전액 기부하셨습니다.

勤勉で有名であったはるもには街中の廃紙などを集めて売って貯金をされて、政府から支援する生活支援金も使わずに集められて2006年から江西区庁奨学会に全額寄付されました。

그렇게 미래세대들을 위해 당신의 전재산을 기부하신 할머니는 막상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작은 영구임대주택이 전부였습니다.

このように未来の世代のために自身の全財産を寄付されたはるもにはただ自分のためのものと言えば小さな永久賃貸住宅がすべてでした。

황금자 할머니께서 운명하심으로써 생존자는 55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하루 하루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계신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그러나 오늘 이 시간도 일본정부는 역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에 또 다시 상처를 입히는 망언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외교정책도 여전히 실종된 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 할머니들의 가슴에 상처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が他界されて(韓国での)生存者は55名になりました。一日一日時間との闘いをされている日本軍「慰安婦」はるもにたち、しかし、今日この時間にも日本政府は歴史に対する責任を認めず、日本軍「慰安婦」被害者たちの傷にまた傷を与える妄言を繰り返しています。韓国政府の外交政策も依然と停滞したまま何もせずにいてはるもにたちのこころの傷は深くなるばかりです。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여러분들께서도 황금자 할머니의 명복을 함께 빌어주시고, 하루속히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어 할머니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노년의 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はるもにの冥福を祈ります。合わせてみなさまもファン・グムジャはるもにの冥福をともに祈って頂き、一日でも早く日本軍「慰安婦」問題が解決され、はるもにたちが少しでも平穏な老年の生を送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共にしてくださることを望みます。

* 장례 문의 : 강서구청 사회복지과 김정환 팀장 010-7741-1133
정대협 생존자복지담당 선지은 간사 010-2434-3663

日本政府は深く反省し、早期、被害者はるもにたちに謝罪と個人賠償をして、
二度とこのような過ちを犯さないように歴史教育の徹底すべきであり、差別と構造的問題を
解決するために全力で注力すべきである。